40주간 예습(예레미야서 1-12장)
구약의 예언자가 많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고통을 많이 받은 예언자를 들라면 단연 예레미야를 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예레미야의 비극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솔로몬에 의해 쫓겨난 사제 에브야타르(열왕기 상권 2장 참조)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독의 후예들이 독점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하다 보니 예레미야가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레미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기원전 627년부터 580년경까지) 예언활동을 했고 특별히 남왕국 유다의 비극적인 종말을 직접 체험한 비극적인 예언자였다.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으로 치닫던 어둠의 시기를 밝힌 유일한 횃불이었다. 이렇게 횃불의 역할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고통을 당했다. 나라가 멸망하는 때 고통 받지 않는 예언자는 가짜 예언자일 것이다. 도움책 구약 예언 교훈편, 272-274쪽 예레미야서를 반드시 참조하라.
예레미야 1-12장은 예레미야의 소명(召命)과 초기 설교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초기에 주로 무엇을 부르짖었는지 살펴보라.
41주간 예습(예레미야서 13-23장)
기원전 609년 요시야 왕이 전사했다.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가 기울어져 가는 아시리아를 도우려고 출병했는데, 요시야가 이집트 군대를 막으려 므기또에서 기다리다 접전을 벌였으나 첫 번째 전투에서 전사했다. 느코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609-598년)을 유다의 왕으로 세웠다. 이때부터 유다는 이집트의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605년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이집트가 바빌론 군대에 패하자 이번에는 바빌론의 속국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호야킴은 친 이집트 정책을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바빌론 군대에 항복하라고 권고했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바빌론 군대의 첩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유다를 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바빌론 군대 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야킴을 비롯한 대신들은 이집트 편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야킴이 다스리던 11년은 예레미야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시련이 많은 시기였다.
바로 이 시기에 그 유명한 고백록 다섯 개가 나왔다. 제1고백록(11장 18절-12장 6절). 제2고백록(15장 10-21절). 제3고백록(17장 14-18절). 제4고백록(18장 18-23절). 제5고백록(20장 7-18절). 이 다섯 개의 고백록에는 인간에 대한 예레미야의 비관주의가 잘 드러난다. 고백록에서 예레미야가 무엇을 불평하고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지 살펴보라.
42주간 예습( 예레미야서 24-39장)
예레미야는 매우 강직한 사람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느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였다. 24-28장에서 예레미야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리고 거짓 예언자 하난야는 무엇을 주장하는지 살펴보라.
30-33장은 위로의 소책자다. 여기에는 예레미야의 낙관주의가 잘 드러난다. 특별히 31장에서 예레미야는 새로운 계약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
34-39장은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의 긴박했던 상황을 묘사한다. 불운했던 마지막 왕 치드키야와 예레미야가 만나는 장면을 유심히 읽어보고 예레미야의 태도와 치드키야의 태도를 비교해보라.
43주간 예습(예레미야서 40-52장. 열왕기 하권 24-25장)
기원전 587년에 드디어 예루살렘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빌론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 멸망 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예레미야가 어떻게 이집트로 끌려갔고 거기서 어떻게 예언활동을 했는지 40-44장에 기록돼 있다.
46-51장은 이방민족들에게 내리는 예언말씀이다. 주변 강대국부터 군소 국가까지 거의 모든 나라가 언급된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주변 나라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내림으로써 주 하느님이야말로 만방을 다스리는 분이고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참된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예레미야서 52장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역사적 부록으로서 열왕기 하권 24-25장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역사적 결론을 내리려고 열왕기에서 발췌해 여기에 놓은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자료를 서로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다.
44주간 예습(애가, 바룩서, 오바드야서)
모두 다섯 개의 시로 된 애가(哀歌)는 70인역 그리스어 성경(LXX)과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는 예레미야가 쓴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고, 다만 예레미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도움책 구약 예언 교훈편, 293-294쪽을 참조하라. 애가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멸망 때 당한 실망과 비탄과 통곡을 애절히 표현한다. 이런 고통 가운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님을 믿는 믿음을 표현하는지 살펴보라.
바룩서는 예레미야의 비서인 바룩이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론 유배지에서 썼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원전 200년경 디아스포라(diaspora)의 어떤 익명작가가 편찬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룩서는 그리스어로 쓰였는데, 기원전 6세기 바룩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훨씬 후대의 언어인 그리스어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움책 구약 예언 교훈편, 295-296쪽을 참조하라. 바룩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네들의 죄를 인정하며 현재의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라.
오바드야서는 구약성서 가운데 가장 짧은 책이다. 예루살렘 멸망으로 실망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려고 쓰였다. 도움책 구약 예언 교훈편, 301쪽을 참조하라. 오바드야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하며 읽어야 한다.
45주간 예습(에제키엘서 1-12장)
기원전 597년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다인의 지도자들을 사로잡아 갔다. 소위 말하는 1차 유배다. 이때 예루살렘의 사제 중에 에제키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에제키엘은 바빌론에 끌려가서 살던 중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바빌론에서 예언활동을 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이방인의 땅 바빌론에서 예언활동을 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에제키엘의 예언활동은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을 전후로 그 내용이 크게 다르다. 예루살렘 함락 전에는 백성의 잘못 때문에 받게 될 처벌을 선포했다(4-24장). 예루살렘 멸망 뒤에는 동족에게 희망을 선포했다(33-48장). 그 중간에 이방민족들에게 내린 말씀이 들어있고(25-32장), 앞에 서문격으로 소명 이야기가 붙었다(1-3장). 도움책 구약 예언 교훈편, 302-304쪽을 참조하라.
1-12장은 예루살렘 함락 전의 예언이다. 에제키엘이 부르심을 받는 이야기(1-3장)을 읽으며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예언자로서 성공을 보장해 주셨는지 알아보라. 4장에서부터 에제키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여러 가지 상징적 행위들을 시작한다. 그런 상징적 행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이 무엇으로 표현되는지 유심히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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